경기 가평군에 위치한 정구선 대표의 수국 동산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선 치유와 희망의 공간입니다. 17년간 정성으로 가꾼 이곳은 개인의 꿈과 삶의 이야기가 꽃피운 결과물이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위로와 행복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수국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빛깔처럼, 그의 정원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남보라빛 수국 동산
몇 해 전 초여름, 마음이 쓸쓸했던 기자는 일본 교토 근교 우지(宇治)의 사찰 정원에서 흐드러지게 핀 수국밭을 만났습니다. 작은 꽃송이가 중심에 알알이 맺히고 헛꽃이 레이스처럼 두른 산수국은 단아한 형상임에도 깊은 남보라빛으로 어쩐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의 산수국과 함께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라는 문구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기 가평군의 한 주택정원에서 교토에서만큼이나 깊은 위로를 건네는 남보라빛 산수국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업가 정구선 씨(㈜건교산업 대표)가 17년 전 집을 짓고 정성으로 일군 정원이었습니다. 수국이 가득 피어난 언덕에서 그는 "이 남보라빛 수국을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행복해요. 미리 가보는 천국 같아요"라고 말하며 수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사단법인 한국정원사협회 모임에서였습니다. 그야말로 정원에 '진심'인 회원들이 정원들을 답사하는 자리였는데, 정 씨는 웃으면서 "우리 집은 특히 수국 필 때가 예쁘니까 그때 오세요"라고 초대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수국 정원이 이토록 대단한 공간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정원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꽃과 나무에 바쳐진 한 사람의 인생 풍경이자 꿈이 현실로 피어난 공간이었습니다.
꿈을 심고 가꿔온 정구선 대표의 삶
정구선 대표의 정원 가꾸기는 오랜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사택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늘 마당 있는 집을 꿈꿨다고 합니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처음 번 돈으로 강원 화천의 계곡 옆 2,000평 땅을 사서는 사과나무 100주, 배나무 100주 등 셀 수 없이 많은 과실수를 심었습니다. 서울 반포에서 주말마다 두 딸을 데리고 화천으로 향했지만, 당시에는 "약을 치지 않고는 뭐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더라고요"라며 꿈이 그저 꿈인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그냥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가 정년퇴직한 뒤 30년 가까이 그 땅을 가꿨습니다. "지금도 화천 집은 그대로 있어요. 엉망진창이지만…." 그 말에는 지난 세월을 온전히 품은 듯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가평으로 이주하면서부터였습니다. 2,300평 대지에 150평 집을 짓고 가꾼 정원에는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는 나무 100여 그루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황철쭉, 황목련, 수양벚꽃, 팥꽃나무, 풍년화, 미산딸나무, 마가목, 낙상홍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나무들 사이로는 플록스와 접시꽃, 에키네시아 같은 아름다운 꽃들과 블루베리가 피어나 바로 지금의 계절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이제껏 먹은 블루베리 양보다 더 많은 블루베리를 이날 정원에서 따먹은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경험했습니다. 정 씨는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꽃을 만지고 있으면 금세 날아가요. 꽃은 그 자체로 응답해 주는 존재니까요"라고 말하며 정원이 그에게 주는 치유의 힘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남들은 뭘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냐고 했지만 그때 저는 숨 쉴 수조차 없었어요."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딸을 키워낸 사업가 엄마는 강했지만 약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힘든 시기에 2008년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딴 것이 그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었습니다. 나무를 심고 가지치기 등 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이 안타까워 지인들과 '파라가든'이라는 정원 공부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천국(파라다이스)과 정원을 합친 말'이라는 이름처럼, 이 모임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이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중에는 함께 나무를 키워 이익이 생기면 공동 분배하는 실험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눔과 희망이 피어나는 수국 정원의 비밀
정구선 대표의 정원 뒤쪽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언덕은 바로 산수국 꽃길이었습니다. 이 수국 동산은 15년 전 화천에서 가져온 단 세 포기의 산수국을 꺾꽂이하여 조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꺾꽂이를 통해 번식시킨 묘목을 주변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꺾꽂이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그해 나온 나뭇가지가 목질화할 때 한 마디씩 잘라 거름기 없고 배수가 잘되는 땅에 물을 말리지 않고 꽂으면 한두 달 후 뿌리가 내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그의 정원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수국은 장마철을 환하게 밝혀주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꽃입니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하는 신비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성 땅에서는 푸른 빛을, 알칼리성 땅에서는 붉은빛을 띠었습니다. 색에 따라 꽃말도 다양했습니다. 분홍색은 사랑과 감사, 빨간색은 열정과 용기, 파란색은 신뢰와 사과, 그리고 보라색은 꿈과 희망을 의미했습니다. 정 씨의 수국 정원에서 기자는 보라색 수국들을 보며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는 수국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수국은 슬픔을 닮은 이에게 말없이 웃어주는 꽃이라는 것을, 슬픔도 나누면 언젠가는 기쁨이 되어 피어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구선 대표의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의 철학과 희망, 그리고 나눔의 가치가 오롯이 담겨 있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그의 정원은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함께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