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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 부활의 꿈을 꾸다

by gugjinjang1 2025. 5. 30.

갭, 부활의 꿈을 꿨습니다. 한때 미국 문화를 상징했던 패션 브랜드 갭(GAP)이 오랜 부진 끝에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매출과 주가가 눈에 띄게 반등하며 '한물간 브랜드'라는 오명을 벗고 부활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갭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물간 브랜드
한때 미국 국민 브랜드

 

한때 미국 국민 브랜드

1969년에 설립된 미국 패션 브랜드 갭(GAP)은 한때 미국의 스타일을 정의하는 국민 브랜드로 불렸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는 'GAP' 세 글자가 크게 박힌 후드티나 맨투맨 티셔츠가 중년이 된 X세대들에게는 옷장에 한 벌쯤 있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1992년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는 갭을 '맥도날드만큼 널리 퍼져 있고, 미키마우스만큼 미국적인' 브랜드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미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에 대담한 색상을 결합한 갭의 스타일은 '눈에 띄지는 않으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고 싶은' 당시 중산층 베이비붐 세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교외 곳곳에 새로 들어서는 대형 쇼핑몰에는 항상 가장 크고 좋은 자리에 갭 매장이 입점했습니다. 갭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당시 '남과 똑같은 옷을 입으면서도 멋지다'는 쿨함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1992년 보그 100주년 기념호 표지에는 갭의 흰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슈퍼모델들이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유명 영화배우 샤론 스톤이 26달러짜리 갭의 검은색 반팔 터틀넥을 입고 나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갭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유명세의 상징이 되었고, 광고에 사용된 노래는 단숨에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갭은 단순한 의류 브랜드를 넘어 미국의 패션을 이끌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아이콘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갭 그룹(Gap Inc.)의 매출은 1992년 30억 달러에서 2000년 137억 달러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주가 역시 5달러 안팎에서 2000년 2월에는 52.88달러까지 치솟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갭은 미국 패션 산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몰락의 시작과 길 잃은 정체성

갭의 화려했던 전성기는 2000년을 기점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H&M이 뉴욕에 첫 매장을 열면서 싸고 빠르게 유행하는 패스트패션의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하며 갭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왔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소비 시장이 양극화되고, '중산층'을 주 타겟으로 했던 갭과 같은 브랜드들의 설 자리가 점차 좁아졌습니다. 갭 그룹의 형제 브랜드인 올드 네이비 역시 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갭을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매장 수 포화 상태에 도달한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공격적으로 매장 수를 늘려왔던 갭은 더 이상 새로운 매장을 열어도 기존 매장의 매출을 잠식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확장의 시대가 저물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쇼핑 시대가 도래하면서 갭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갭 그룹은 리더십의 대혼란을 겪었습니다. 2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었던 미키 드렉슬러 CEO가 2002년 실적 부진으로 물러난 이후, 후임 CEO들이 몇 년 만에 교체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전직 월트 디즈니 임원, 캐나다 약국 체인 책임자, 경영 컨설턴트, 글로벌 공급망 전문가 등 패션이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CEO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들은 데이터 분석에 의존하여 시장을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려고 했지만,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숫자로만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명확한 비전과 방향성 부재는 브랜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해에는 패스트패션과 경쟁하기 위해 저렴한 옷을 내놓다가, 그다음 해에는 수백 달러짜리 고가 의류를 판매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 갭은 점점 더 어떤 스타일과 가치를 대표하는 브랜드인지 소비자들에게 모호하게 인식되었고, 결국 '가끔 엄청나게 할인하는 스웨터를 살 수 있는 브랜드'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몰락의 과정에서 갭이 부활을 위해 시도했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힙합 뮤지션 칸예 웨스트(지금의 '예')와의 협업이 있습니다. 2020년 양측이 손잡고 '이지 갭(Yeezy Gap)'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시장은 열광했습니다. 5년 안에 연 매출 10억 달러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함께 갭의 주가는 단숨에 30% 넘게 급등했습니다. 실제로 출시된 후드티는 정가에 웃돈이 붙어 팔릴 정도로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 협업은 심각하게 지연되었습니다. 18개월 동안 제품 단 2개만을 출시하는 극심한 더딘 속도를 보였고, 결국 칸예 웨스트는 2년 만에 갭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이는 갭에게 큰 굴욕이었으며, 브랜드 정체성은 외부에서 빌려오거나 무임승차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구축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만 남겼습니다.

 

 

구원투수 등장과 부활의 조짐

CEO 자리가 1년 가까이 공석이고, 매출은 계속 감소하며, 주가는 바닥을 헤매고, 직원 1800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암울한 상황이 이어지던 2023년 8월, 갭은 새로운 구원투수를 영입했습니다. 바로 리처드 딕슨입니다. 그는 마텔이라는 79년 된 미국의 유명 장난감 기업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던 인물입니다. 마텔은 바비 인형을 성공적으로 리브랜딩하고 '바비' 영화의 흥행을 이끌며 장난감 기업의 성공적인 변신 사례를 만든 회사였습니다. 딕슨 CEO는 마텔에서 쌓은 브랜드 리바이벌 및 운영 효율화 경험을 바탕으로 갭의 재건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딕슨 CEO가 합류한 이후 갭 그룹은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졌던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비효율적인 운영 구조를 개선하며, 재고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등 전반적인 경영 시스템을 재정비했습니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최근 실적과 주가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갭 그룹의 실적이 눈에 띄게 반등하며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이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갭의 주가는 무려 96% 상승하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반영했습니다. 물론 현재 주가는 과거 2000년 전성기 최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 이하 수준이지만, 오랜 기간 부진을 겪었던 브랜드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한물간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던 갭이 리처드 딕슨 CEO의 리더십 아래 다시 한번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마텔에서 보여줬던 성공적인 리브랜딩 경험이 갭에서도 통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갭이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갈지 귀추가 주목되었습니다. 패스트패션과 이커머스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갭이 자신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어떻게 다시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