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의 유키오 리핏, 멀리사 매코믹 부부 교수가 한국 전통 미술의 세계적인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고려 불교 미술은 중국, 일본보다 더 대범하고 장인의 기술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역설했습니다.
한국 전통 미술의 세계적 가능성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교 미술사학과의 유키오 리핏 교수와 멀리사 매코믹 교수가 한국을 방문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동아시아 고미술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부부 교수입니다. 매코믹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입지가 아주 넓어졌다"고 평가하며, 이러한 흐름이 "조선 수묵화나 고려 불화 등 전통 미술에서도 그 가능성을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에서 열렸던 한국 미술 전시의 높은 인기가 이를 입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K팝, K드라마 등으로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이 전통 미술 분야로도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습니다. 리핏 교수는 특히 "고려 불교 미술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는 고려 불교 미술이 "중국, 일본과 비교했을 때 크기는 더 대범하고, 그림을 그린 장인의 기술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고려 불교 미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강조했습니다. 두 교수는 27일부터 이틀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왕실 문화와 미술'에 발표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 특히 왕실 미술은 그 중요성과 우수성에 비해 더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리핏 교수는 2003년부터, 매코믹 교수는 2005년부터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리핏 교수는 일본 에도시대 정치권력과 미술의 관계를 다룬 저서 등으로 일본 중세·근세 회화 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16세기 조선 화가 이암의 '강아지 그림'에 대해 "17~18세기 일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매코믹 교수는 일본 궁정 미술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로, '중세 일본의 소형 족자와 토사 미쓰노부', '겐지 이야기: 시각적 동반자' 등의 대표 저서가 있습니다. 이들 부부 교수의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한 높은 평가는 한국 미술의 세계적인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왕실 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
리핏 교수와 매코믹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동아시아 왕실 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리핏 교수는 학술대회에서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쇼소인(正倉院·정창원) 소장품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쇼소인은 756년 쇼무 일왕의 명복을 빌고자 고묘 왕후가 일왕과 자신의 애장품을 봉헌한 창고로, 일본 귀족은 물론 백제, 신라 등 주변국이 일왕에게 선물한 고대 유물 9000여 점이 폐쇄적으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일본 쇼소인 소장품 가운데 대표적인 한반도계 보물로는 '신라 금(琴)'이 꼽히며,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하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적칠문관목주자(赤漆文灌木厨子)'도 주요 핵심 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리핏 교수는 이러한 보물들을 단순히 '국제 교류의 흔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쇼무 일왕이 군주로서 갖는 권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 사상 처음으로 출가해 승려가 된 왕으로서 세속과 권위를 포기한 모습이 투영됐다"는 '이중성(doubleness)'을 짚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에서 건너간 악기인 '신라금'이나 중국이 조공한 악기 '5현 비와'는 보살이 되고자 했던 쇼무 일왕이 쾌락을 포기했음을 상징하는 물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두 교수는 왕실 미술을 "군주의 이상이 다층적으로 반영된 예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는 왕실 미술이 단순한 장식이나 기록을 넘어, 군주의 철학이나 정치적 메시지, 심지어 내면의 갈등까지 담아내는 복합적인 예술품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매코믹 교수는 일본 에도시대의 한 족자 그림을 통해 궁정 기록화가 "단순 기록물을 넘어 고전 설화처럼 재구성된 복합적 예술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는 후대에도 왕실의 권위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킬 시각적 장치로 활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족자는 하버드대 소장품으로, 과거 일본 왕궁에서 거행되었던 불교 의례가 그려져 있습니다. 매코믹 교수는 조선시대 왕실 기록화인 의궤나 궁중 행사도 이와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조선은 화재와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이 여러 번 소실된 한편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해야 했단 점에서 에도시대와 닮았다"며, "18, 19세기 두 나라는 회화 전통을 활발히 주고받았고, 특히 의궤는 휴대성이 높으니 영향을 주거나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동아시아 궁정 기록화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이 주로 기록성이나 사실성에 집중되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매코믹 교수는 "동아시아 궁중화가 단순히 경험적인 기록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감동적, 상상적인 예술로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왕실 미술의 학술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한국 왕실 문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
리핏, 매코믹 교수는 한국의 문화, 특히 왕실 미술이 그 중요성과 우수성에 비해 더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리핏 교수는 "험준한 근대사로 인해 온전히 살아남기 어려웠던 동아시아 왕실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왕실 문화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근대사를 거치며 많은 부분이 소실되거나 훼손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산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연구와 보존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한국의 왕실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두 교수의 연구는 한국 왕실 미술이 중국이나 일본 미술에 비해 독자적인 가치와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고려 불교 미술에 대한 리핏 교수의 높은 평가는 한국 불교 미술의 세계적인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미술은 K팝, K드라마 등 현대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하버드대 교수 부부의 연구와 평가는 한국 전통 미술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세계 미술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한국 왕실 문화와 미술에 대한 더욱 활발한 연구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 전통 미술의 진정한 가치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