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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국채 시장의 엇갈린 전략: 장기채를 줄이는 국가와 늘리는 국가

by gugjinjang1 2025. 6. 12.

미국, 일본, 영국은 높은 금리 부담과 투자자 수요 변화로 장기 국채 발행을 줄이는 반면, EU, 독일, 중국은 대규모 재정 사업을 위해 장기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별 엇갈린 국채 만기 전략은 각기 다른 재정 및 금융 정책 목표와 위험 요소를 반영합니다.

 

 

장기채를 줄이는 국가
시장의 엇갈린 전략

 

미국, 일본, 영국: 장기 국채 발행 축소 기조

최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국채 발행 전략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일본, 영국은 만기가 긴 장기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거나 더 이상 늘리지 않는 보수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각국의 고유한 경제 상황, 통화 정책 방향, 그리고 국채 투자자들의 성향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일반적으로 국채 만기를 길게 가져가면 발행 시점에 확정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어 금리 변동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발행 시점의 이자 부담은 높아집니다. 반대로 단기채 발행을 늘리면 당장의 자금 조달 비용은 낮출 수 있지만, 만기가 짧아 자주 차환 발행을 해야 하므로 향후 금리 상승 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최근 장기채 발행을 줄이는 국가들은 주로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으로 인한 이자 부담 증가를 경계하며 단기 자금 조달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최근 30년물 및 40년물과 같은 초장기 국채 발행 규모 축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2023년 말부터 일본 중앙은행(BOJ)이 그동안 대규모로 매입해왔던 채권 매입을 줄이는 긴축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장기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재무성은 이렇게 장기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국채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발행 만기 구조를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재무성 관계자는 투자자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초장기채 발행 규모를 더욱 줄일 수도 있다고 밝혀, 장기채 발행 축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미국 역시 최근 장기채 발행 규모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것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2023년 하반기부터 10년 이상 만기의 장기 국채 입찰 규모를 5개 분기 연속으로 동결했습니다. 이는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장기채 발행 증액과는 다른 행보였습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월에 향후 몇 분기 동안 국채 발행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스탠스는 최근 진행된 국채 입찰 결과를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난달 28일 진행된 700억 달러 규모의 5년물 미 국채 경매는 예상보다 낮은 표면 금리(4.071%)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5년물에 대한 투자 수요가 강했기 때문에 재무부가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이에 앞서 21일에 진행된 160억 달러 규모의 20년물 미 국채 경매에서는 표면 금리가 5.047%를 기록하며 2020년 20년물 재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만기가 긴 20년물 국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미국은 나랏빚(국채 발행 규모)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기채 위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영국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국은 지난 3월 2025~2026 회계연도 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만기 15년 초과 국채의 발행 비중을 기존 20%에서 13%로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장기채 발행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국채 발행 비중을 늘리겠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EU, 독일, 중국: 대규모 장기 국채 발행 확대

미국, 일본, 영국과는 달리, 유럽연합(EU), 독일, 중국은 최근 장기 국채 발행 규모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주로 미래를 위한 대규모 정부 사업이나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자를 추진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장기채 발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공동 재원 마련을 위해 대규모 장기 EU 채권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25년 만기의 70억 유로 규모 '넥스트제너레이션EU(NGEU)' 채권을 발행했는데, 놀랍게도 발행 규모의 12배가 넘는 약 865억 유로의 주문이 몰리며 발행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는 EU 공동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EU가 장기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왔던 독일도 최근 30년물 국채 발행을 확대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30년 만기 국채 발행 규모를 지난해 22억 유로에서 올해 26억 유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독일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클레이즈의 로한 카나 금리 전략 헤드는 이러한 독일의 변화가 유럽 국채 시장에서 독일 국채(분트)의 위상을 높이고 담보 부족 문제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지난 1월에 30년 만기 국채 100억 유로어치를 발행했는데, 이 또한 발행 규모의 13배가 넘는 초과 주문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중국 역시 올해 대규모 장기 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하며 이 흐름에 동참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25년 정부 업무 보고에서 20년, 30년, 50년 만기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총 1조 3000억 위안 규모로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해 발행 규모인 1조 위안보다 3000억 위안이 증액된 수치로,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자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장기 특별 국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처음 도입된 이후 주로 인프라 투자 재원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지난달 23일에 실시된 50년물 특별 국채 입찰에서도 비교적 낮은 금리(2.10%)로 낙찰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확인했습니다.

 

 

엇갈린 국채 전략의 배경과 위험 요소

이처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국채 발행 정책이 엇갈리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주요 배경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투자자 성향의 변화'입니다. 전통적으로 장기 국채의 주요 매수층이었던 연기금과 생명보험사들이 최근 장기채 매입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환경으로 인해 생명보험사와 은행 신탁 등이 투자 전략을 변경하면서 20~40년물 장기채에 대한 수요가 둔화되었습니다. 영국의 상황은 2022년 발생했던 연기금의 '부채 연계 투자(LDI)' 파산 위기의 영향이 큽니다. LDI 전략을 사용하던 영국 연기금들이 금리 급등으로 인해 대규모 마진 콜에 직면하며 장기 국채 시장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영국 연기금들은 장기채 레버리지 투자를 축소했고, 결과적으로 30년~50년물과 같은 초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영국 국채 관리국(DMO)도 지난해 3월에 영국 연기금 및 생명보험사의 장기채 수요가 최근 몇 년간 상당히 줄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두 번째 배경은 '각국의 이자 부담 및 재정 정책의 차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채 만기를 늘리면 장기적인 이자 비용을 고정할 수 있지만 초기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만기를 줄이면 단기 조달 비용은 낮아지지만 금리 변동 위험에 노출됩니다. 재정 당국은 고정된 이자 비용을 중시할 경우 장기채를 선호하고, 당장의 이자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면 단기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과 영국은 최근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며 만기를 단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경우입니다. 미국 역시 급증하는 나랏빚과 높아지는 금리로 인해 이자 비용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단기채 위주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 EU, 중국은 미래를 위한 대규모 투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장기채 발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인프라 및 국방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도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 투자를 추진 중입니다. 이들은 금리 변동에 관계없이 필요한 자금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긴 만기, 금리 록인(확정)' 전략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별 엇갈린 국채 정책은 각기 다른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기채 발행 증가는 '롤오버(차환 발행)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기가 짧은 국채 비중이 높아지면 일정 시점마다 대규모의 국채를 다시 발행해야 하는데, 이때 금리가 급등하거나 시장 유동성이 경색되면 자금 조달 비용이 폭등하거나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이러한 롤오버 스트레스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장기채 발행 증가는 국채 발행의 평균 조달 금리를 상승시켜 국가의 전체 이자 부담을 늘리고, 이는 국가 신용등급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신용평가사 피치가 중국의 신용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이유 중 하나로 정부 부채 증가와 재정적자 확대를 꼽았는데, 이는 장기채 발행 확대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국채 시장의 '듀레이션 디바이드(만기 분할)'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유럽과 중국은 상대적으로 기준 금리가 크게 변동하지 않고 대규모 재정 투자가 계속 필요하므로 장기채 발행을 통한 '긴 만기, 금리 록인'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일본과 영국은 이미 국채 평균 만기가 긴 편이고 중앙은행들이 양적 긴축을 유지하고 있으며, 높은 금리로 인한 이자 비용 증가를 경계하고 장기채의 주력 매수층도 약화되었기 때문에 단기채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금리가 오르면 국채 이자 비용이 늘어나 재정에 압박이 생길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기조를 뒷받침했습니다. 각국의 경제 상황과 정책 목표에 따라 국채 만기 전략이 엇갈리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