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최근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과도한 소비자 직접 판매(DTC) 전략이 원인으로 지목되며 '잃어버린 5년'을 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았습니다.
과도한 DTC 전환, 패착의 시작
나이키는 오랫동안 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및 패션 브랜드의 선두주자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매출 성장세가 둔화되고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등 암흑기를 보내고 있으며, 주가 역시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부진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특히 전임 CEO인 존 도나호의 과도한 '소비자 직접 판매(DTC)' 전략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이키의 성공 비결로 칭송받았던 DTC 전략이 어쩌다 패착으로 이어졌는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존 도나호 CEO는 2019년 취임 직후, 나이키를 도매 중심 기업에서 DTC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나이키 자체 매장이나 자사 온라인 쇼핑몰인 'nike.com'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이 전략을 위해 나이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매로 제품을 공급해왔던 소매업체 중 약 30%와의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2020년 말에는 자포스, 메이시스, 어반아웃피터스 등 미국 내 주요 대형 판매업체에도 더 이상 제품을 납품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남은 소매업체에 판매하는 물량도 줄이고, 특히 인기 있는 프리미엄 제품은 자체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풋로커와 같은 주요 운동화 소매점에는 제공하는 상품 종류와 수량을 대폭 축소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DTC 전환은 주로 '마진 극대화'를 목표로 했습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면 그만큼의 이익을 나이키가 직접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당시 DTC는 전자상거래 업계의 큰 흐름이었고, 많은 신규 브랜드들이 DTC를 전면에 내세워 성공 사례를 만들면서 'DTC 혁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나이키는 이러한 최신 유행에 올라타 디지털 전문가였던 도나호 CEO의 지휘 아래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단기 성공과 전략의 균열
나이키의 DTC 전략은 초기에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도 나이키의 온라인 판매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공식 온라인 몰 회원 수는 1년 만에 7000만 명이나 늘었습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편안한 운동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나이키 매출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2021년 초, 1980년대 농구화 디자인을 복원하여 출시한 '판다 덩크(나이키 덩크 로우 레트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리셀(Resell) 열풍을 일으키며 나이키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나이키는 다양한 색상의 덩크 모델을 연달아 출시했습니다. 오랜 기간 브랜드 이미지 광고로 명성이 높았던 나이키는 DTC 전략에 맞춰 마케팅 방식도 바꿨습니다. 모호한 메시지의 이미지 광고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퍼포먼스 마케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이 역시 초기에는 눈에 보이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듯했습니다. 2021년 6월, 나이키는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6%, 순이익은 291% 급증했다고 발표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월가는 열광했고, 존 도나호 CEO에게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나이키의 DTC 전략을 성공 사례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나이키 주가는 급등세를 탔고, 2021년 11월에는 사상 최고가인 17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주가 상승으로 도나호 CEO는 막대한 인센티브를 받으며 성공한 디지털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2022년까지도 나이키는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매출 총이익률도 2년 연속 상승했습니다 (2020 회계연도 43.4% → 2022 회계연도 46%).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이 개인 정보 보호 강화를 위해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도입하면서 디지털 마케팅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광고 예산을 쏟아부어도 과거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동시에 나이키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재고 물량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도매 중심 판매 방식에서는 재고 관리가 유통업체의 몫이었지만, DTC 구조에서는 나이키가 이 부담을 직접 떠안아야 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프라인 소매 매장에서 나타났습니다. 나이키가 거래를 중단하거나 물량을 줄인 풋로커 같은 소매점들은 나이키의 빈자리를 아디다스, 뉴발란스, 푸마, 리복 등 기존 경쟁업체와 호카(Hoka), 온(On)과 같은 신흥 브랜드 제품들로 빠르게 채워나갔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이키 제품은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이는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재고 폭탄과 경쟁사의 맹추격
돌이켜보면 나이키는 이때라도 DTC 전략에 대한 재검토에 나섰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존 도나호 CEO는 투자자들에게 "핵심 사업 계획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디지털 투자 강화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재고를 소진하고 판매를 늘리기 위해 할인 행사가 남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즌 종료 세일, 미드시즌 세일, 연말 세일, 회원 전용 세일, 친구 및 가족 세일 등 1년 내내 크고 작은 할인 이벤트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할인 판매는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2023 회계연도에 접어들면서 나이키의 재고 물량은 사상 최고 수준인 97억 달러까지 불어났습니다. 과도한 할인 판매와 늘어난 재고 부담으로 인해 매출 총이익률은 43.5%로 뚝 떨어졌습니다. 나이키는 재고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동시에 러닝화 시장에서는 호카와 온 같은 후발 주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2019년 고작 2억 2000만 달러 수준이었던 호카의 매출액은 2024년에 2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온러닝 역시 매출이 2억 8600만 달러에서 28억 달러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두 브랜드의 매출을 합쳐도 여전히 나이키 전체 매출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 시장 점유율이 1% 남짓했던 후발 업체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나이키의 핵심 영역을 잠식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러닝화 전문 브랜드들은 나이키가 스스로 주요 소매 매장에서 물량을 줄이면서 생긴 빈자리를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러닝 열풍이 불면서 이들 브랜드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이키의 무리한 DTC 전략은 유통 채널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재고 부담을 가중시켰으며, 경쟁사에게 시장을 내주는 패착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나이키가 6년 만에 아마존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이러한 실패를 인정하고 전략 수정에 나섰음을 시사했습니다. 1등의 오만으로 인한 잘못된 전략이 나이키에게 '잃어버린 5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이키가 과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