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분석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일상을 감옥으로 만들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자기 검열을 유도하는지 설명했습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권력 작동 방식의 변화를 분석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촘촘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인 '판옵티콘(panopticon)'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깊이 있게 분석했습니다. 판옵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한 형태로,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있고 이를 둘러싸고 원형으로 감옥이 배치되는 구조였습니다. 간수는 역광을 통해 모든 죄수를 감시할 수 있었지만, 죄수들은 어두운 탑 안의 간수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분리', 즉 '시선의 비대칭성'이 판옵티콘의 핵심이었습니다. 간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죄수들은 항상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푸코는 이 책에서 권력 작동 방식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과거의 권력이 잔인한 신체형을 통해 죄인의 몸에 고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면, 근대 사회의 권력은 비신체적인 감시와 훈육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푸코는 이제 '영혼(정신)이 육체의 감옥'이 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보았습니다. 즉, 권력은 개인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억압하기보다, 정신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훈육'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훈육은 감옥뿐만 아니라 정신병원, 학교, 군대, 공장, 회사 등 다양한 사회 기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건축학, 행정학, 심리학, 의학, 법학 등 여러 지식이 동원되어 개인의 신체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길들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푸코는 권력이 어느 한 명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 주체가 권력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왕이 자신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잔인한 처형이 사라지고, 권력이 점차 수평적이고 분산된 형태로 변화했음을 의미했습니다. 전염병의 창궐 시 개인을 공간에 가두고 창문을 통해 건강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은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분명해지는 예시였습니다.
현대 사회, 보이지 않는 '디지털 판옵티콘'
푸코가 분석한 판옵티콘의 원리는 현대 사회에 '디지털 판옵티콘'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 역시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 기록, 교통카드 사용 내역, 소셜미디어 활동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기술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보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전자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이러한 통제 방식은 더욱 은밀해지고 전방위적인 '전자 판옵티콘'의 양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수감자가 감옥에서 출소하더라도 다른 방식의 감시와 통제가 지배하는 새로운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시는 특정 '빅 브러더'가 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독재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푸코의 판옵티콘에서는 적과 동지의 피아 구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에 맞서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권력의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 범죄학자 토마스 마티센은 판옵티콘에 저항할 수 있는 대안으로 '시놉티콘(synopticon)'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시놉티콘은 다수 시민에 의한 권력 감시 체제를 의미하며, 시민 운동을 통해 정치 부패, 권력 남용, 언론 횡포 등을 감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푸코의 관점에서 이러한 역감시 역시 판옵티콘의 핵심인 '시선의 비대칭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통제하고 감시하는지 모를 때 가장 불안한데, 디지털 판옵티콘은 바로 이러한 권력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 자기 검열을 경계
푸코가 가장 두려워한 미래 사회의 모습은 감시자 없이도 개인이 자동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판옵티콘의 가장 완벽한 통제 방식은 외부의 강제가 아닌,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날 해킹으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위치 추적, QR코드 등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을 때 가장 두려운 점은 바로 그 '누구'가 누구인지, 즉 권력의 본질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통제하고 감시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가장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판옵티콘은 잔인한 처벌이 감시로 바뀌는 권력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고문이나 사형 등이 실제로 사라져 인권이 향상된 것 같지만, 전기전자 기술이 악용되면 무시무시한 전자 감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감시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고, 특정한 행동 패턴을 따르도록 유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판옵티콘'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했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디지털 환경에서의 권리 의식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권력의 본질을 알 수 없는 감시 속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