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과 신기술이 기존 규제에 가로막혀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제도가 도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샌드박스를 통해 시범 운영된 사업의 80%가 정식 출시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규제 부처의 미온적인 태도와 기존 이익 집단의 반발 때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혁신 기업들은 희망 고문에 시달리고 있으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 왜 멈췄나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기존 법이나 규제 때문에 시장에 나오기 어려울 때, 일정 기간 동안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해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시장에서 테스트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신산업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2019년 도입되었습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샌드박스를 통해 총 1819건의 실증 특례가 승인되어 시범 운영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 진출을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시범 운영이 정식 시장 출시로 이어지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입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1819건의 실증 특례 중 법 개정 등 규제 개선까지 이루어져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된 사업은 429건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전체 실증 특례 건수의 23.5%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샌드박스를 통해 시범 운영된 사업 10개 중 약 8개는 시장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샌드박스 승인을 통해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투자 유치 등의 기회를 얻지만, 결국 정식 출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는 혁신 기업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샌드박스 제도가 혁신을 위한 발판이 되기보다는, 시범 운영만 하다 끝나는 '희망 고문'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고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샌드박스 승인 이후 정식 출시로 이어지는 연계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부처 이기주의와 이익집단 반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낮은 정식 출시율을 보이는 주된 원인으로는 규제 부처의 미온적인 태도와 기존 이익 집단의 강력한 반발이 꼽히고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국무조정실이 운영을 총괄하지만, 실제 신사업 관련 규제를 소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6개 부처가 주관 부처로서 샌드박스 신청을 받고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실증 특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통상적으로 3년 정도의 실증 특례 기간 동안 사업의 안전성, 효과성 등을 검증한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관련 법을 개정하여 규제를 개선하고 정식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규제 부처들이 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혁신 서비스의 시장 진출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J사는 휴대폰으로 업체별 폐차 비용을 비교해주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하여 2019년 3월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승인을 받았습니다. 4년간 시범 운영을 통해 서비스의 유용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정부로부터 즉시 시장에 출시해도 문제없다는 '임시 허가' 판단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기존 폐차 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해당 서비스의 관련 규제인 자동차 관리법을 소관하는 국토교통부는 법 개정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국무조정실이 규제 개선의 필요성을 국토부에 전달했지만, J사는 2023년부터 3년째 정식 출시가 아닌 임시 허가 상태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늦은 밤이나 휴일 등 약국이 문을 닫았을 때 비대면으로 소화제 등 일반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화상 투약기' 역시 2022년부터 실증 특례만 계속 진행 중입니다. 국무조정실이 추가 규제 개선을 권고했지만, 관련 규제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기존 약사 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규제 부처가 기존 이익 집단의 반발이나 부처의 이기주의 때문에 혁신적인 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샌드박스 제도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도를 총괄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해야 할 국무조정실은 현재 '권고' 권한만 가지고 있어 제도 개선을 강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역시 자문 기구에 불과하여 실질적인 조정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도 개선 방안 모색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혁신 기업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무조정실은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샌드박스 총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행정 규제 기본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국무조정실의 권한을 강화하여 규제 개선 과정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규제개혁위원회를 단순 자문 기구가 아닌 '의결 기구'로 격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규개위가 의결 권한을 갖게 되면 부처 간 이견이 있을 경우 규개위의 결정에 따라 규제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강제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무조정실이 단순 조정 역할을 넘어 직접 샌드박스 신청을 받고 심사부터 법 개정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현재 6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샌드박스 주관 기능을 모두 국무조정실로 통합하여 운영할지, 아니면 기존 주관 부처 외에 국무조정실을 또 하나의 선택지로 추가하여 부처 간 경쟁을 유도할지는 논의 중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공약집에서 샌드박스 적용 확대를 통해 혁신 기업의 시장 진출 지원을 강화하고, 실증 특례 승인 이후 상용화로 이어지는 연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제도 개선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도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은 샌드박스 근거법에 공적 주체(입법자 포함)가 특정 조치를 이행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는 '실험 조항'을 명시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총리 자문 기관인 '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 규제 개혁에 관한 의견을 상시 접수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공표하는 방식으로 규제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규제 부처는 기존 이익 집단을 고려하여 규제 변경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의견 차이가 발생할 경우 '규개위의 결정에 따른다'는 내용을 행정 규제 기본법에 명시하는 등 국무조정실의 조정 기능에 구속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이러한 제도 개선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규제 샌드박스가 혁신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