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홈랜드 엘레지'와 트럼프 시대의 본질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아야드 악타르의 2020년 장편소설 '홈랜드 엘레지(Homeland Elegies)'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더욱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던집니다. 소설은 작가와 동명인 주인공 아야드 악타르가 한때 트럼프의 주치의였던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아버지는 트럼프가 "무슬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외일 것"이라며 귀를 닫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주인공은 "불가능하리만큼 강해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자신, 부채나 진실, 역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자신… 아버지가 트럼프에게서 본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고 읊조립니다. 이는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어떤 판타지를 심어주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악타르 작가는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시대를 소설의 주제로 삼은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트럼프를 "분별없이 내달려 온 미국적 판타지의 종착점"이라고 규정합니다. 부를 미덕으로 여기고, 잔혹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하며, 쇼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바로 트럼프라는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환경과, 국가가 파는 꿈을 꿨다가 결국 배신당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트럼프가 2016년 낙선했더라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그의 당선은 미국이 훨씬 더 원시적이고 부족주의적인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2018년 이탈리아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 '이탈리아에게'를 읽으며 '미국이란 나라의 모순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술에 빠져 살던 시기에 가족이 미국인으로서 겪은 일을 '조국에 대한 애가(哀歌)'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악타르 작가는 트럼프가 정치 엘리트들과는 다른 종류의 친밀감을 유권자들에게 주었으며, 거짓말에 능숙한 모습조차 유권자들을 홀렸다고 분석합니다. 첫 번째 당선이 쇼의 차원이었다면, 재선은 '종교'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치가 아니라 신앙이기에 진실 여부는 중요치 않고, 고통에 답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가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이라기보다 '태도'이며, 교리를 가장한 브랜딩 같다"고 비판합니다. 트럼프는 미국 내부의 혼돈을 외부로 드러내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세계는 미국이 '규칙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시장과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민자 정체성의 딜레마와 미국 사회의 민낯
아야드 악타르 작가는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의 복잡한 단면을 조명해왔습니다. 그의 첫 소설 '아메리칸 더비시(American Dervish)'는 순진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었고, 풀리처상을 수상한 희곡 '수치(Disgraced)'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변호사의 삶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특히 '수치'는 주인공이 9·11 테러 당시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광경에 '자부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장면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슬람 혐오와 이민자들의 복잡한 정체성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 결과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백인과 무슬림 이민자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반응에 실망하지는 않지만 혼란스럽기도 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작품이 되새길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오해도 산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작가라면 복잡다단한 정체성의 지도 위 어디에라도 깃발을 꽂아야 하며, 설령 그곳이 모래 위라고 해도 그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작가로서 진실을 탐구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줍니다. 이민 1세대 부모님의 삶에 대한 질문에 악타르 작가는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미국은 실력과 야망, 그리고 의사의 하얀 가운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보상의 땅'이었던 반면, 어머니에게는 전통과 신성함이 사라진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분의 결이 맞부딪히며 자신의 안에 작가의 불씨가 자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민자 2세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문화적 충돌이 오히려 창작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부와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미국인 척'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악타르 작가 자신도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가짜처럼' 느낄 때가 많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분명히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지만, 동시에 그 꿈이 사라지는 과정에 대한 글도 썼다며, 자신은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미국이라는 집의 주인은 아니지만, 집 안을 조용히 걸어 다닐 줄 아는 사람 같다고 비유하며 이민자로서의 복잡한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그는 미국 사회의 본질을 '인종차별과 배금주의'라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미국에서 '유동성(돈)'은 신이요, '거래'는 의식이며, '수익'은 도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름다움, 우정, 고통까지도 숫자로 바꿔 버리는 현실을 지적하며, 문학과 예술은 돈이 전부라는 감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진짜 삶은 보이지 않는 것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며, '지혜 부자'야말로 진짜 자산가라고 역설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혐오가 커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공감'과 '제대로 이해된 자기 이익'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다양성을 밀어내는 사회는 결국 경직되어 망할 것이며, 이민자, 타자, 이방인은 위협이 아니라 다원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강조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적절한 정책과 서로를 견디려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을 탐색하는 작가의 여정
아야드 악타르의 소설 '홈랜드 엘레지'는 자서전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설 주인공과 작가의 이름이 같고, 프로필과 이력도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아버지가 파키스탄 출신 의사이고, 소설 속 아야드의 아버지가 한때 트럼프의 주치의였다는 설정도 실제와 매우 흡사합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답하기 어렵다. 사실과 허구를 섞은 형식을 통해 그 경계를 탐색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은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진실을 말하기 위해 허구를 덧입혔다는 것입니다. 뉴스 속보와 SNS에 흠뻑 빠진 독자들에게는 리얼리티 TV쇼 같은 감각으로 다가가야 흥미를 끌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삶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진짜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현대 독자들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고려한 작가적 전략이자,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서사 방식에 대한 고민을 보여줍니다. 소설에서 악타르 가족의 정치적 갈등을 비중 있게 다룬 것에 대해 작가는 미국에서 정치가 언젠가부터 '감정의 영역'이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정치가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를 두려워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지 않은지를 말해주는 '정체성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격렬하지만 얕은 논쟁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가려서 해야 하는 분위기라는 질문에 그는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답합니다. 정부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색이 다른 상대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져 모든 대화가 테스트처럼 느껴지니 사람들이 입을 다물게 되고, 이러한 침묵 자체가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는 심각한 신호라고 경고합니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결말에 대해 작가는 실제 아버지는 소설 출간 직전에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밝힙니다. 그래서 글에서 아버지가 원하던 마지막을 선물했다고 말하며, 예술은 때로 인생이 남긴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덧붙입니다.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고, 이 책이 애도의 힘을 가졌다면 그것은 자신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동력 삼아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며 작품에 담긴 깊은 애정을 드러냅니다. 악타르 작가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상실, 그리움, 소외, 갈망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실제 나와 '척하는 나'의 간극을 파고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독자가 겪은 적은 없는데도 왠지 본인 이야기 같다고 느끼는 순간, 문학의 마법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는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도 보여주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정말 강렬했고, 고요하면서도 도덕적 힘이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이창동, 이상, 황석영 등 한국 작가들의 글도 읽었다며, 현대 한국 문학에는 고통과 투명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울림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 전체에 대한 청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기쁨을 느끼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햇살, 아내의 웃음소리, 정원에 핀 장미, 침묵과 같은 소박한 것들을 꼽았습니다. 그중 최고는 글을 쓰면서 진실한 무언가에 닿았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 짧고 선명한 순간에 더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말하며 작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드러냅니다. 한국 독자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건졌으면 하냐는 질문에는, 이 책이 요즘 많은 이들이 마음에 품은 질문인 '믿음을 잃은 나라에 살면서 어떻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까'를 다룬다고 답합니다. 책이 대단한 위로는 주지 못하더라도 함께한다는 기분은 선사할 수 있으며,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