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국채 발행 전략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영국은 만기가 긴 장기채 발행을 줄이거나 유지하는 반면, 유럽연합(EU), 독일, 중국 등은 장기채 발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국의 경제 상황, 통화 정책, 그리고 국채 투자자들의 성향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주요국의 엇갈린 국채 만기 전략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주요 국가들의 국채 발행 정책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만기가 긴 장기 국채 발행을 줄이거나 현 수준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오히려 장기채 발행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엇갈린 전략은 각국의 재정 당국이 처한 상황과 미래 전망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최근 30년, 40년 만기 등 초장기 국채의 발행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은행(BOJ)이 채권 매입을 줄일 조짐을 보이면서 장기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자, 국채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발행 만기 구조를 재검토한 결과라고 알려졌습니다. 투자자 수요가 예상보다 둔화될 경우 초장기채 발행량을 줄일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역시 최근 장기채 발행 확대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2023년 하반기부터 10년 이상 만기의 장기 국채 입찰 규모를 5개 분기 연속으로 동결했습니다. 이는 당초 장기채 발행 증액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다른 행보였습니다. 영국 또한 지난 3월 2025~2026 회계연도 국채 발행 계획에서 만기 15년 초과 장기물 비중을 기존 20%에서 13%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장기채 발행을 늘리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공동 재원 마련을 위해 대규모 장기 EU 채권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25년 만기의 70억 유로 규모 넥스트 제너레이션 EU(NGEU) 채권을 발행했는데, 발행 규모의 12배가 넘는 약 865억 유로의 주문이 몰리며 뜨거운 수요를 확인했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국채 발행 정책을 펴왔던 독일도 최근 30년물 국채 발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12월 30년 만기 국채 발행 규모를 올해 26억 유로로 늘리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22억 유로보다 증가한 수치입니다. 프랑스 정부도 지난 1월 30년 만기 국채 100억 유로어치를 발행했는데, 13배가 넘는 초과 주문이 몰리며 장기채에 대한 강한 수요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 역시 올해 대규모 장기 국채 발행에 나설 계획입니다. 중국 정부는 2025년 정부 업무 보고에서 20년, 30년, 50년 만기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총 1조 3000억 위안 규모로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1조 위안보다 3000억 위안 증액된 규모입니다. 이러한 초장기 특별 국채는 주로 인프라 투자 등 대규모 재정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처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국채 만기 전략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전략 차이의 배경과 이유
국가별로 국채 발행 만기 전략이 엇갈리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채 투자자들의 성향 변화입니다. 전통적으로 장기 국채의 주요 매수층이었던 연기금과 생명보험사들이 최근 장기 채권 매입을 주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환경 속에서 생명보험사와 은행 신탁 등이 투자 전략을 변경하면서 20년에서 40년 만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둔화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2022년 연기금의 부채 연계 투자(LDI) 파산 위기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금리 급등으로 대규모 마진 콜에 몰렸던 영국 연기금들은 이후 장기채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를 축소하면서 30년에서 50년 만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었습니다. 영국 국채 관리국(DMO)도 최근 몇 년간 영국 연기금과 생명보험사의 장기채 수요가 상당히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각국의 이자 부담 수준과 재정 정책 방향의 차이입니다. 국채 만기를 길게 가져가면 한 번 확정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발행 시점에서는 단기채보다 이자 비용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국채 만기를 짧게 가져가면 단기적으로는 자금 조달 비용(이자)을 낮출 수 있지만,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다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롤오버(재투자)' 위험이 커지고 향후 금리 변동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일반적으로 재정 당국이 상대적으로 고정된 이자 비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장기채 발행을 늘리고, 당장의 이자 비용 절감을 중시하면 단기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과 영국은 최근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재정 당국이 조달 비용 증가, 즉 이자 부담 증가를 경계하면서 만기 단축으로 선회한 경우입니다. 미국 역시 국가 부채 규모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기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 EU, 중국은 미래를 위한 대규모 정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독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인프라 및 국방 투자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했으며, 중국도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EU 역시 공동 재원 마련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장기적인 사업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장기채 발행을 통해 금리를 미리 확정(록인)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국채 전략의 위험과 앞으로의 전망
서로 다른 국채 만기 전략은 각기 다른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기채 발행 비중을 높이는 전략은 국채 롤오버 리스크 확대로 이어집니다. 만기가 짧은 국채가 많아지면 정부는 더 자주 시장에서 자금을 다시 조달해야 하는데, 만약 이때 금리가 급등하거나 시장에 유동성 경색이 발생하면 국채 조달 비용이 폭등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이러한 롤오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추진을 발표한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특정 수준에 접근할 때마다 미국 행정부가 관세 완화 대책을 내놓은 이유 중 하나로 국채 조달 부담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반대로 장기채 발행 비중을 높이는 전략은 국채의 평균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발행 시점에 금리가 높을 경우 장기간 높은 이자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이는 국가의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국가 신용 등급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신용평가사 피치가 중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내린 이유 중 하나로 장기 부채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국채 만기 전략의 차이, 즉 '듀레이션 디바이드(Duration Divide)'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입니다. 유럽과 중국 등은 기준 금리가 비교적 큰 변동 없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며, 대규모 재정 사업을 위한 자금 수요가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국채의 긴 만기를 통해 금리를 미리 확정하는 전략을 유지할 유인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일본이나 영국은 이미 국채의 평균 만기가 긴 편이며, 중앙은행이 양적 긴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기채에 대한 주력 매수층의 수요도 줄어든 상황입니다. 일본 재무상도 금리가 오르면 국채 이자 비용이 늘어나 재정에 압박이 생길 수 있다고 언급하며 금리 상승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일본과 영국은 당분간 단기채 선호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국의 경제 상황과 정책 목표에 따라 국채 만기 전략은 계속해서 다르게 나타날 것이며, 이는 글로벌 채권 시장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