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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용사, 희생으로 지켜낸 나라

by gugjinjang1 2025. 6. 29.

6·25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용사의 딸과 또 다른 참전용사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지켜낸 눈부신 발전에 감사를 전하며 깊은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용사 아내
한국 감동

 

 

희생으로 지켜낸 나라

마미테 훈데 센베타 씨(73세)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마지막 가족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였습니다. 그 사진은 1951년, 아버지가 한국으로 파병 가기 직전 임신 3개월이던 어머니와 함께 찍은 것이었습니다. 센베타 씨는 아버지가 강원도 화천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으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오직 사진으로만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6·25전쟁 75주년을 앞두고 센베타 씨는 경북 포항 양포교회의 초청으로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비행기 탑승이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기 위해 싸웠던 나라를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힘들지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강뉴부대의 헌신과 고난의 세월

6·25전쟁 당시 22개국 약 195만 명의 유엔군이 한국을 도왔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6037명의 지상군을 파병했습니다. 이들은 '초전박살'을 뜻하는 '강뉴(Kagnew) 부대'로 불리는 최정예 황실 근위대였습니다. 강뉴 부대는 강원도 화천과 철원 등에서 총 253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할 정도로 강인한 부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으며, 센베타 씨의 아버지도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의 전사 후 센베타 씨와 어머니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키우기 위해 매일 3400m 산꼭대기에 올라 나무를 베어 팔고 식당 부엌일을 병행했습니다. 센베타 씨는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2평짜리 진흙 바닥 집에서 살았으며,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결혼해 네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1974년 쿠데타로 에티오피아가 공산 국가가 되면서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동맹군에 맞선 반역자로 몰려 참전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센베타 씨의 어머니는 남편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11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습니다.

 

 

눈부신 한국의 발전에 감사와 감동

이번 방한에는 1952년 강원도로 파병되었던 100세 참전용사 테세마 가메 씨도 동행했습니다. 가메 씨는 서툰 한국어로 '아리랑' 가사를 읊조리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황폐하고 사람이 드물었으며 매서운 추위에 말 한마디 하기 힘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들었던 아리랑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방한 일정 동안 이들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 사업을 하는 비영리 기구 따뜻한동행 등을 방문했습니다. 센베타 씨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한국이 엄청난 성장을 이룬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곳을 가볼 수 있다면, 그곳에 꽃을 놓고 "당신이 지킨 나라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 중에 숨졌지만 한국을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아버지가 지킨 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에 감사하다고 덧붙였습니다. 2021년 따뜻한동행으로부터 집수리 지원을 받았던 가메 씨도 "젊은 시절 싸워 지켜낸 나라에서 오히려 나이를 먹고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며 "한국을 위해 평생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