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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선재길, 폭염을 잊게 하는 천년 숲

by gugjinjang1 2025. 7. 11.

강원도 평창 오대산에 위치한 월정사 선재길은 폭염을 피해 떠나기 좋은 여름 힐링 코스입니다. 일주문부터 상원사까지 약 9km에 이르는 이 길은 울창한 전나무 숲과 계곡물, 그리고 다양한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순례길입니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한 숲속에서 치유할 수 있는 이 특별한 여정을 소개합니다.

 

 

천년 숲
폭염 날리는 숲길

 

폭염을 날려버리는 천년 전나무 숲길

도시의 뜨거운 아스팔트를 벗어나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주문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짜증과 화, 폭염이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곳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느꼈던 것처럼 태양이 눈부셔 화가 치밀어 오르는 도시의 열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일주문에 서면 가장 먼저 장대한 전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약 1km에 걸쳐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숲길은 황톳길로 조성되어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도 합니다. 맨발로 걸으며 느끼는 흙의 감촉과 짙은 피톤치드 향기는 그 자체로 자연 치유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걷는 내내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만 보여주면 쪼르르 다가오는 다람쥐와 함께 걷는 즐거움은 이 길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선재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계곡을 끼고 걷는 순례길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폭염, 무더위, 열대야는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매력 덕분에 '오대산 천년 숲 선재길 걷기 행사'는 2004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고 있으며, 한눈팔지 않고 걸으면 보통 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높아 여름철 최고의 힐링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우러진 힐링 코스

선재길의 또 다른 매력은 순례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과 석조보살좌상(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등 놓치면 후회할 문화유산이 즐비합니다. 특히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 앞에 서면 탑에 달린 수십 개의 풍경(風磬)이 바람에 흔들려 청아한 '화음'을 들려주는데, 이 소리를 들으며 잠시 서 있다 보면 폭염도, 스트레스도 모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선재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금강연(金剛淵), 월정사 부도군, 반야연(般若淵)을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금강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물이 휘돌아 모여서 못이 되는데, 용이 숨어 있다는 말이 전해온다. 봄이면 열목어가 천 마리, 백 마리씩 무리 지어서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묘사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반야연의 물이 내려와 모이는 이곳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코스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를 들러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한번 방문해보면, 왜 이곳에 실록을 보관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군, 청군, 북한군조차 알고 오지 않는다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숨겨진 이 장소는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상원사까지, 계절을 앞서가는 여정

선재길의 종착점인 상원사는 세조가 이곳에 와 피부병이 나았다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상원사 동종(국보)이 있는 이곳은 현존하는 한국 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찰 입구는 매우 가파른 계단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너무 가팔라 하늘을 쳐다볼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문이 보일 정도입니다. 상원사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군데군데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어 방문객들을 놀라게 합니다. 한여름에도 이곳에서는 벌써 가을이 시작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 폭염이 이곳에서는 맥을 못 추는지 몸소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상원사까지 오르는 길은 다소 힘들 수 있지만, 그만큼의 보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펼쳐지는 오대산의 풍경은 그간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상원사 경내에서는 고요함 속에서 오랜 역사와 불교 문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상원사 동종은 그 웅장함과 아름다운 소리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명상에 잠기거나, 단순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휴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오를 때는 목표 지점을 향해 걷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들꽃이 저렇게 많았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길가의 작은 풀꽃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오를 때는 '걸어야 한다, 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내려올 때는 그러한 부담 없이 온전히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숲속 벤치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었습니다. 일주문 앞에 세워둔 차에 오르자, 사라졌던 상사가 다시 나타났고, 도시의 폭염도 다시 시작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오대산 선재길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여름휴가를 넘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천년의 숲이 선사하는 시원함과 문화유산이 주는 깊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대산 선재길은 폭염 속에서도 '극락'과 같은 평화를 선사하는, 진정한 힐링의 장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