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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 빛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

by gugjinjang1 2025. 7. 10.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의 서울 개인전 '리턴'이 관객들을 빛의 심연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터렐은 이번 전시에서 빛을 단순한 조명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질이자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제시했습니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지평선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고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빛과 인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제임스 터렐
지평선 없는 세상

 

나의 인식이 세상을 구성하는 '지평선 없는 세상'

제임스 터렐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지평선 없는 풍경'을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안개나 구름이 자욱한 곳을 비행하는 조종사, 혹은 눈보라로 온통 흰색만 보이는 곳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에 비유하며, 관객들이 이러한 공간에서 익숙한 세계관을 벗어나 자신만의 감각과 주변 관계에 집중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마치 중성 부력 벨트를 찬 잠수부가 물속에서 위아래를 구분하기 위해 공기 방울에 의존하는 것처럼, 터렐은 관객들이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지평선이 사라진 공간에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터렐이 말한 '지평선을 잃어버린 세상'은 곧 "나의 인식에 따라 구조가 결정되는" 세상을 의미했습니다. 지평선이 명확한 세상에서는 하늘과 땅, 위아래가 고정되어 있고, 인간은 이미 결정된 '세팅' 안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연역적 사고'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지평선이 없는 세상에서는 '나'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나와 관계 맺는 것들, 내가 느끼는 것들이 세상을 구성하게 되는 '귀납적 사고'의 세상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정신을 집중하여 무언가를 생겨나게 하는 가능성의 공간인 '화이트룸'과 같은 것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지평선 없는 경험은 처음에는 불편하거나 어지럽게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곡예비행을 할 때처럼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터렐은 시간이 지나면 곡예비행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관객들도 이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고 즐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미 우주 공간의 무중력 상태나 인터넷 공간처럼 지평선이 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인류는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전과 후의 차이는, 세상과 삶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깨닫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었으며, 이는 관객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빛을 물질로 다루는 예술가의 철학

제임스 터렐은 지평선을 제거한 무한의 공간에 자신이 집어넣는 것이 바로 '빛'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빛이 무언가를 비추는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소리를 녹음하여 레코드나 음원 파일로 다시 듣는 것처럼, 터렐은 빛 그 자체를 조각처럼 빚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빛은 우선 물리적인 실체였습니다. 광자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파동 현상을 보이지만 분명한 물리적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빛을 덧없고 순간적인 형태로 보기를 좋아했으며, 빛 자체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습니다. 독서할 때 책을 비추거나 회화, 조각을 밝히는 등 다른 것을 비추는 데 사용하는 정도로만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터렐은 우리가 빛을 '먹기도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피부를 통해 자외선이 들어와 비타민D를 만들고, 빛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면 뇌의 세로토닌 균형이 깨져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빛이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빛은 소리처럼 우리에게 감정적인 무언가를 전달했습니다. TV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나오기 전에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방을 '그린 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빛은 특정한 감정 상태를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 빛은 영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었는데, 영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루시드 드림(자각몽)'에서도 '빛'에 관한 표현이 쓰이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터렐은 빛을 묘사하기보다 빛 자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빛은 나무나 돌처럼 구부릴 수도 없고 점토처럼 형태를 만들거나 금속처럼 용접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빛을 만들어내는 어떤 도구가 필요했으며, 소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악기가 필요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투영' 시리즈를 만들며 빛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LED 기술이나 컴퓨터로 제어하는 다이오드가 발전하여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운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이제 빛을 다루는 여러 도구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물리적 존재로 빛을 보여주는 것은 부족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고 멍해져서 꼼짝 못 하는 사슴처럼, 인간 역시 빛에 반응하는 존재이며, 터렐은 빛의 힘이 바로 그런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찬사와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

기자간담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제임스 터렐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진심을 전했습니다. 그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그저 빛 한 조각을 전하고 싶었던 평범한 예술가 한 사람입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빛 자체를 경험하기를 바랐으며, 모든 작품이 성공적이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터렐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단지 빛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존경과 찬사를 표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이나 케이팝부터 클래식 음악가까지 다양한 곳에서 한국인들이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한국인들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탁월한 성과에 감탄했습니다. 자신 또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이 정말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터렐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빛이라는 보편적인 매체를 통해 인간의 인식과 감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까지 던지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내면의 빛을 발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빛 한 조각을 전하고 싶다는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