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철강회사 US스틸의 일본 기업 매각 소식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경제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과 주요 대선 후보들이 나서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이 문제가 일자리와 국가 안보, 그리고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이 되었습니다. US스틸 매각이 왜 이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미국 산업의 상징, US스틸의 변화
US스틸은 1901년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왕' JP모건이 주도하여 설립된 회사로, 탄생 당시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를 거치며 미국 제조업의 역사와 함께했고, 한때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릴 만큼 거대한 위상을 자랑했습니다. 본사가 있는 피츠버그는 오랫동안 '철의 도시(Steel City)'로 불리며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이 제철소에서 일했고, 미식축구팀 이름도 '스틸러스(Steelers)'일 정도로 철강 산업이 도시의 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US스틸의 위상도 달라졌습니다. 1970년대 연 4000만 톤을 생산하며 세계 2위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제 조강 생산량 기준 세계 24위로 현대제철보다 작은 규모가 되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뉴코아,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에 이어 3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일본, 한국,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새로운 기술 투자에 소홀했던 결과였습니다. 더 이상 제조업이 미국 경제의 중심이 아니게 되면서 그 효용을 잃어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한 전문가는 US스틸의 위상은 1916년에 정점을 찍었고, 이후 계속 하락세였다고 평가했습니다. 1980년대 피츠버그는 제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다른 러스트벨트(Rust Belt) 도시들처럼 침체에 빠졌고, 실업률이 치솟고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한때 30만 명에 달했던 US스틸의 미국 내 직원 수는 이제 1만 5000명 수준으로 줄었고, 피츠버그에서 일하는 직원은 300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피츠버그는 제철소 대신 병원과 대학이 주요 고용주가 되고 의료, 교육, 로봇 산업 중심의 하이테크 도시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 다시 번성하고 있으며,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US스틸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이름만 남은 채 예전 같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제철의 인수와 정치권의 반발 격화
오랜 경영난에 시달리던 US스틸은 결국 지난해 매물로 나왔고, 2023년 12월 세계 4위 철강 기업인 일본제철이 경쟁 입찰 끝에 149억 달러(약 20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당시 US스틸 주가보다 40%나 높은 가격이었고, US스틸 주주들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매각을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산별노조인 미국철강노조(United Steelworkers)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일본제철이 해고나 공장 폐쇄를 하지 않고 노조가 있는 공장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지역 정치인들도 노조와 같은 목소리를 내며 대통령이 이 인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는 곧 미국 대선의 핵심 경합주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피츠버그가 펜실베이니아주에 속해 있고,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이 19명이나 걸린 최대 격전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펜실베이니아를 잡아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당시 부통령) 모두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나섰습니다. 두 후보는 펜실베이니아를 찾아 US스틸 매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일본이 US스틸을 사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말했고, 해리스 후보는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하며, 미국 철강 노동자를 지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조만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인수 불허의 이유는 주로 '국가 안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철강 생산이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며, 중요한 산업을 다른 나라에 넘길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필요한 철강 생산량은 미국 전체 생산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왔습니다.
경제 논리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
이번 US스틸 매각이 대통령과 양당 대선 후보들이 모두 나서서 막아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경제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이 거래를 막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이 거래로 인해 실질적으로 어떤 손해를 보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며, 특히 일본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기 때문에 국가 안보 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US스틸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 전체 인구 대비 소수에 불과한데, 왜 이 문제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 데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더 이상 제철소에서 일하지 않고 철강 산업에 큰 관심이 없는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이 이슈가 왜 어필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경제 논리를 뛰어넘는 '감정'과 '상징성'에 있습니다. US스틸은 단순히 철강 회사를 넘어 미국 제조업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를 함께하며 미국 산업의 역사를 써 내려간 기업입니다. 따라서 US스틸이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과거 미국 산업의 힘과 자존심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 누리꾼은 US스틸 매각이 미국 철강 산업의 종말을 의미하며, US스틸에서 일했던 할아버지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보다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과거의 강력했던 미국 제조업에 대한 향수가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US스틸이라는 이름이 가진 역사적이고 감정적인 무게감이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하며,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US스틸 매각 문제는 경제적인 이해득실을 넘어선 미국 산업의 상징성과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얽힌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